엄마와의 배낭여행 중국 둘째날 1 - 장사(Changsha)에서 장가계(zhangjiajie)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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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아시아 기간 2008.9.1 ~ 2008.9.11 (10박 11일) 컨셉 엄마와의 배낭여행
엄마와 중국 배낭여행 둘째날 - 창사(Changsha)에서 장가계(zhangjiajie) 이동
엄마와 함께 둘러맨 배낭 – 10박 11일의 중국 배낭여행 이야기 (2008년
9월)
둘째날 - 창사(Changsha)에서 장가계 이동
- 엄마와 내가 묵었던 민항대주점(Civil Aviation Hotel) 7층 더블방
아침 6시쯤 눈을 떴다.일찍 일어났지만 굵고 짧게 잠을 잘 잔 셈이다.이리 저리 많이 걸은 탓인지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이다.지금 생각을 해 보니 열 하루간의 여행에서 숙면이 어려웠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마이너스 수면으로 여행을 시작한 탓도 있지만 매일같이 행군하듯 걸으면서도 먹는 것은 부실했으니 엄마에게나 나에게나 잠보다 나은 특약이 없었을 터이다.
20분 전에 일어나셨다는 엄마는 침대에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계셨다.벌써 십 수년 째 기상 스트레칭을 하시는 것이니 내게는 익숙한 모습이다.
혹시나 해서 창문을 열어보니, 그래도 7층이라고 눈 아래로 장사 시내의 모습이 들어온다.이 정도면 꽤 규모있는 도시이다.호남(Hunan)성의 수도이고 인구도 100만 정도 된다고 하지 않나.여행 가이드 책에서 창사(Changsha)에 대해서 읽을 때 난 그 곳이 고향 구미보다도 작을 줄 알았다.완전히 우물 안 개구리였던 셈이다.
중국이 크다고 해 보았자, 내게는 방송 매체를 통해 접한 베이징과 상하이를 빼면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바로 이웃 국가, 역사적으로 그렇게 얽히고 설킨 중국에 대해서 난 너무 몰랐다.장사는 인구부터 벌써 구미의 세 배가 넘는다.창문으로 내려다 본 장사에는 아파트등 나름대로의 고층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있다.이렇게 난 중국이라는 나라의 크기에 놀라기 시작한다.
어제 사다 놓은 빵과 과일로 아침을 먹고 준비를 마친 후 8시에 체크아웃을 했다.방 열쇠를 주니 프론트의 아가씨가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체크아웃시에는 방에서 파손되거나 분실된 물건이 없는지를 이렇게 일일이 확인한 후에야 야진에서 숙박비를 제외한 금액을 돌려주는 것이었다.

- 아침에 본 민항대주점 (Civil Aviation Hotel, in Changsha, Hunan, China)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환전을 하는 것이다.공항에서 했어야했는데 겨를이 없었고, 솔직히 눈치도 없었다.베이징이나 상하이등의 대도시로 갈 것이 아니면 중국 배낭 여행시에는 미리 환전을 해 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아니, 베이징이나 상하이같은 대도시에서도 환전을 계획성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환전 가능한 은행을 찾기 위해 작심하고 걷을 작정이 아니라면 말이다.나는 달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최소한의 위안만 환전하고 온 것이었는데 지갑이 얇아지자 걱정이 늘기 시작했다.
천만다행으로 호텔에서 장사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중국은행(Bank of China)이 우리를 기다려주었다.고맙게시리 9시가 아닌 8시부터 업무를 하는 것이었다.하지만, 내 환전을 담당하는 직원이 초보였나보다.대문 활짝 열어놓고 우리를 기다린다고 좋아했더니, 초짜 직원덕분에 대기시간까지 30분이 걸렸던 것 같다.
대기석에 앉아 기다리시는 엄마는 엄마대로 고생을 하셨다.은행 경비원이 거의 줄담배를 피우다시피했기 때문이다.은행 안에서 말이다.은행에 대한 고마움은 어느덧 사라지고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할 때 쯤 어제 김팀장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생각난다.중국인에 대해서 여유를 가지라고.그래, 이것도 내가 경험하고 싶어했던 그들의 문화이다.
300달러를 2025원으로 환전하고 장사역 옆의 우체국으로 향했다.밖에서만 본 창사역 우체국은 상당히 큰 건물이었다.그 옆 광장에는 버스가 번호별로 여러 줄 대기하고 있었다.302번을 찾느라고 조금 헤맸는데 책을 다시 보니 312번이었다.어제 여행사 직원 아저씨가 버스 번호를 잘 못 알려준 것이다.장사역에서 장사 서부 터미널로 이동하는 버스는 312번이다.8시 50분쯤에 6원 (3원 x 2)을 내고 창사 서부 버스 터미널행 버스에 올랐다.
장사역에서 서부 터미널까지는 40분 정도 걸리는 긴 시간이었지만 버스 차창 너머로 창사의 모습을 구경하느라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 중간에 상강(? Xiang River)을 건널때 찍은 사진. 도로 옆에 자전거, 오토바이, 사람이 동시에 다니는 작은 길이 있었다.
버스에서 평화롭게 이국의 도시를 바라보고 있을 때만 해도 조용한 시골 버스터미널 정도를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서부 터미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의 순진했던 기대는 다시 스르르 무너져버렸다.시장 장터가 따로 없었다.우리나라 5일장의 정감이 넘치는 그런 장터 말고,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 난 듯한 싸움터같은 장터였다.조금 과장하자면 말이다.
틈을 주지 않는 중국 사람들 가운데서 표를 살 수 있었던 것을 대견해할 여유도 없었다.주어진 몇 초내로 일을 완수하지 않으면 당장 새치기를 해대는 무서운(?) 중국인들 가운데서 처음으로 한자를 써 가며 장가계행 표를 산 것이 나름대로는 무척 뿌듯했는데 말이다.1초라도 한 눈을 팔면 코 베일 것 같은 혼잡함 속에서 그대로 정신이 멍해져 버렸다.
익숙하지 않은 중국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으니 더 따갑게만 들려왔다.그렇지 않아도 올렸다 내렸다를 수도 없이 바꾸는 언어인데 고래고래 소리까지 지르는 듯 하니, 아무리 천사표 마음을 가졌어도 반갑게 들릴 리가 없었다.앉을 곳도 겨우 찾을 만큼 혼잡한 곳에서 마구잡이로 피워대는 담배 연기, 군데군데서 들리는 날카로운 안내 소리...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목소리 자랑하듯 큰 소리로 얘기를 하거나, 피곤에 지쳐 멍하게 우리를 쳐자보거나 , 낡고 찌든 때가 가득한 쟈켓에 파묻혀 잠을 자거나 하고 있었다.
빨리 그 곳을 벗어나고만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다른 것은 몰라도 심한 담배 연기때문에 고생하시는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일주일을 남겨놓고 멋대로 장가계행 비행기를 취소해버린 항공사의 행태가 더 얄미워졌다.
그러다가 말로만 듣던 문이 없는 칸막이 화장실을 경험하고 나서는 그 모든 혼잡함을 초월하듯 웃어버릴 수 있었다.차마 눈 돌릴 데가 없는 화장실을 다녀온 후는 피식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참, 이렇게도 사는구나.엄마와 난, 말도 없이 그렇게 정신없이 웃어 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대기 시간은 길지 않았다.버스표에 나와있는 시간인
10시 훨씬 이전에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무릉원으로 바로 가는 버스를 타고 싶었지만 발매 안내원의 한자를 보면 오후 2시 50분 즈음에나 있는 것 같다.어쩔 수 없이 190원 (95원 *
2)를 내고 장가계 시내 방면으로 표를 끊은 것이다.
장가계행 버스는 좁고, 낡고 지저분했다. 안전벨트는 차라리 사치이고 그물망이며 손잡이등 그 어떤 부속품도 제대로 달려있지 않았다.하지만 사람 잡아갈 것 같은 버스 터미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간신히 한숨을 돌렸는데 이제는 버스가 터미널을 빠져나가질 못 하고 쩔쩔매고 있다.터미널 입구 교차로는 교통사고라도 난 것 마냥 혼잡했다.순서를 지킨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나라인 것 같다.교통신호는 화려한 장식일 뿐인지… 버스는 10 여분 공시동을 돌리고 나서야 가까스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우스운 것은 겨우 몇 시간을 보냈건만, 이제 이런 황당함(?)이 익숙해진다는 것이다.김팀장님의 말씀이 정말 맞다는 것을 또 절감한다.
1시간쯤 지나서 화장실을 가고 싶었지만 버스안의 화장실은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다행히 2시간 정도 지나서 버스는 어느 한산한 휴게소에 들렀다.엄마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텅 빈 휴게소에는 주유대 몇 개와 조촐한 기념품 상점, 그리고 교통 사고의 치명성을 상기시켜줄 목적으로 전시해놓은 찌그러진 자동차가 한 대 있었다.
지나고 보니 황당하지만 진기하고도 우스운 경험들이다.장사에서 장가계행 버스는 다시는 타고 싶지는 않지만,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으며, 또 버스에서 바라본 풍경은 살뜰히 기억해두고 싶다.장가계에 가까워지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웅장한 산세에 나는 충분히 감탄할 수 있었다.나이가 들수록 산이 더 거룩해보여서일까.나는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려가며 이 산 저 산을 눈에 들여두었다.혼란스럽고 불안했던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장가계에 가면 어찌해야할지를 미리 파악하기 위해 중간중간 열심히 책과 지도를 들여보았다.갑자기 버스 왼쪽에 앉은 아주머니가 잡지 책을 하나 건네준다.옆에 앉은 젊은 청년 - 뭐라고 불러야할 지 모르겠다.아저씨도 아니고 학생도 아니고.청년이라고 부르니 내가 무척 나이든 사람 같다.-.-;;
-을 가리키면서.얼떨결에 고맙다고 인사를 잡지 책을 들여다보니 여행 잡지책이다.얌전하게 생긴 청년이었는데 여행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열심히 지도를 파고드는 내가 안 되어 보였나보다.내가 절실한 상황에 있어서였을까.그 따뜻한 마음에 나는 절로 감동을 받았다.
천문산 타는 엘리베이터 정거장이 어디에 있는지, 터미널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 영어로 물어보니, 내 질문을 다 이해하지는 못 한 듯 하다.지도를 건네주며 대강 바디 랭기지와 영어로 다시 물어보니 터미널에서
10분 정도 거리이며 장가계시 안에 있다고 알려준다.바로 그 정보였다.책에서나 뽑아온 인쇄물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정보였다.나는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자기는 영어를 못 해서 미안하다고 자꾸 사과를 한다.영어를 하면 설명을 더 잘 해 줄 수 있을 거라면서.미안하기는 중국말을 못 하는 내가 미안해해야했다.이름을 물어보니 이메일이 적힌 명함을 하나 주었다.옆에 앉은 아주머니와 같이 보내주는 격의없는 웃음이 정말 따스하다.터미널에서 겁 먹은 내 마음이 저절로 풀어졌다.
엄마는 여전히 주무히고 계셨다.장사를 떠난 후 계속되는 드넓은 목화밭을 구경하시다가 잠이 드셨는데, 쌓인 피곤으로 쉽게 깨지 못 하시는 것이다.그래서 엄마에게는 장사에서 장가계가는 길엔 목화밭 기억이 가득하시다.가도 가도 계속되는 평야의 기억.장가계에 가까워지면서 볼 수 있는 거대한 산들은 사진조차 찍어놓지 않아 엄마에게 전해드릴 수가 없었다.그래도 산보다도 들을 더 좋아하시는 엄마에게 많이 섭섭한 일은 아닌 듯 했다.꿀맛같은 단잠을 주무셨으니...
참, 잠드시기 전에, 목화가 무성한 차창 밖을 바라보시면서 엄마가 발견하신 것이 있다.장사에서 장가계 사이의 시골에서는 집을 한 군데로 모아 짓지 않고 듬성듬성 지어놓았다는 것이다.논 두 어개 건너 건물 하나식으로 말이다.그래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우리나라 시골마을 같은 정겨움이 없었다.
더구나 서툴게 창문만 커다랗게 만들어 놓은 것이 꼭 초등학생이 우유곽으로 건물 흉내내기 놀이를 한 것 같아 더 서먹했다.신기하기도 했다.어쩌면 저렇게도 멋 낼 생각을 하지 못 했을까.하나같이 똑같은 집을 지어놓다니.땅은 넓은데 아직은 집 지을 기술이 딸리는 곳이구나.상하이같은 대도시는 확연히 틀렸지만 장사에서 장가계가는 버스에서 바라본 시골 마을들의 풍경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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