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그레코 - 신학적 가상현실
화가로서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명성은 이 한 장의 그림에서 비롯된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엘 그레코, 1586-1588년
크레타 출신으로 스페인에서는 그냥 '그리스인'으로 불렸던 이 마니에리스모의 거장. 그는 이 그림이 아직도 걸려 있는 장소, 즉 톨레도의 산토 토메 성당에서 일어났던 어떤 기적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이 교회의 후원자였던 돈 곤잘로 루이스를 매장할 때, 스테파누스와 아우구스티누스, 이 두 서자가 나타나 친히 백작의 사체를 입관했다 한다.
화면은 크게 위아래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단을 실제 이루어지고 있는 매장 의식. 상단은 백작의 영혼이 천국에 받아들여지는 '상상'을 보여준다. 천사 하나가 구름 사이의 비좁은 틈으로 백작의 영혼을 밀어넣는다.
하단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의식의 현실, 하나는 기적의 환영이다. 저 놀라운 사건은 세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기적을 보는 것은 오직 두 사람, 성자들 바로 왼쪽의 어린아이와 그 반대편에 등을 돌리고 있는 신부뿐이다. 아이는 그림 밖의 관람자에게 시선을 돌리며 손가락으로 이적의 현장을 가리키고, 신부는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놀라 두 팔을 벌린 채 놀라운 은총을 내려준 하늘을 바라본다.
당시 사람들은 엘 그레코를 '영혼을 보는 자'라 불렀다. 세인의 눈에 이상하게 비친 엘 그레코의 광기(?)는 아마도 그가 로마로 간 1570년과 톨레도에 나타난 1577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와 관련이 있을 게다. 그 7년 사이의 행적은 묘연하지만 우리가 아는 그의 스타일이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된 것만은 분명하다. 대체 로마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변화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미켈란젤로였다. 이 거장이 말년에 제작한 작품들은 당시 비평가들의 이해력을 넘어섰다. 르네상스의 자연주의를 고집하던 비평가들의 눈에 그것들은 그저 '미완성', '노망기'로 보였을 뿐이다. 실제로 1488년에 제작된 바티칸이 <피에타>, 1550년에 제작된 피렌체의 <피에타>, 그리고 1564년에 제작된 <론다니니 피에타>를 비교해보면, 르네상스 예술의 격률인 '자연의 모방과 형식의 이상화'가 서서히 파괴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피에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499년
<피에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550년
<론다니니 피에타> 미켈란젤로 부오나르티, 1564년
이 시기에 자신의 상황을 묘사하는 미켈란젤로는 종종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구절을 사용했다. "사람들은 거기에 얼마나 많은 피가 들어갔는지 생각하지 못한다."
엘 그레코에게 영향을 준 또 한 사람의 화가를 꼽자면,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틴토레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역시 엘 그레코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거듭남'을 체험한다. 그것도 엘 그레코에게 그런 일이 생겼던 바로 그 7년 동안에. 이 시기를 전후하여 틴토레토의 변화를 사람들은 흔히 '금빛 스타일'에서 '푸른 스타일'로의 이행이라고 부르곤 한다. 이제까지 베네치아의 화가로서 그이 작품은 자연주의적 색채의 감각전 호소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영적 거듭남을 겪은 그 7년 사이에 틴토레토이 스타일은 큰 변화를 겪는다. 화폭에서 채도가 높은 색채는 사라지고, 그 대신에 잿빛처럼 푸르스름한 우중충한 색조가 등장한다. 그것은 사물의 객관적 색조가 아니라, 영혼의 주관적 상태의 표출에 가깝다. 이는 강렬한 열정에 사로잡힌 이에게만 가능할 것이다. 화면을 비추는 빛도 자연광이라기보다는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빛, 즉 이 세상이 아닌 초월적 세계에서 유래하는 가상의 빛에 가깝다. 이것은 실재의 재현이 아니라 비전의 현시다.
엘 그레코는 미켈란젤로에게서 형태의 비자연주의, 그리고 틴토레토에게서는 색채와 구성이 비자연주의를 배웠다. 이제 화가들의 눈은 더 이상 가시적 현실을 향하지 않는다.
신화와 같은 이교적 제재를 포기하고 전적으로 성서에 전념하는 가운데 엘 그레코는 성서의 장면을 판타지에 가깝게 묘사한다.
<정원의 고뇌> 엘 그레코, 1590-1595년경
마치 동화의 배경같다. 이 작품에서 예수는 어떤 알 수 없는 근원 속에서 흘러나오는 신비한 빛의 조명에 감싸여 있다. 엘 그레코가 보여주는 것은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초현실의 비전이다. 가령
<요한묵시록의 다섯 번째의 개봉> 엘 그레코, 1608-1614년경
위 그림은 그의 작품의 환상성을 잘 보여준다. 당장 눈에 띄는 것은 인물들의 크기의 콘트라스트이다. 전면에 요한이 하늘을 우러른다. 비례는 왜곡되어 무릎을 꿇은 그가 마치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르네상스의 형식미, 즉 비례의 완전성은 깨져 있다. 그 뒤로 막 부활한 인간들에게 천사가 옷을 가져다준다. 이것은 현실의 장면이 아니다. 다가올 심판의 환상, 저 황홀경에 빠진 요한의 눈에만 보이는 장면이다.
"그는 미쳤다." 사람들은 종종 그를 이렇게 불렀다. 교회의 물질주의를 반성하는 반동 종교개혁도 결국은 세속의 물질주의와 타협을 하고 만다. 교회와 세속에 범람하는 물질주의를 참을 수 없었던 영혼은 '광기'에 사로잡힌 이들만 볼 수 있는 초월적 비전의 세계로 거처를 옮겨야 했고, 그 때문에 오로지 물질의 세계만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미쳤다'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그는 순수한 이상주의의 화신,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와 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 위 내용은 <서양미술사 1 - 진중권 지음>에서 발췌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