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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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명상 - 오쇼 7 / 7장 의식의 빛

명상 - 오쇼 7 / 7장 의식의 빛


 

<< 의식의 빛 - 그대는 육체가 아니다 >>

 

명상의 기초적 토대는 육체, 사념 그리고 감정의 진정한 본질을 정화하고 경험해보는 것으로 이정도만 이루어져도

삶은 축복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이 정도만 이루어져도 삶은 신성이 될 수 있다. p247

 

 

산야신이 말했다.

"내 스스로 이미 버린 목숨을 가져갈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가서 그대의 알렉산더에게 말하라.

그의 힘이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을지 모르나 자신을 이미 정복한 자를 정복할 수는 없다고." p249

 

크리쉬나가 다음과 같이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조차 그것을 태울 수 없고, 화살조차 관통할 수 없으며 칼조차 자를 수 없다.

있음, 그 존재는 우리의 내면에 있다.

불조차 태울수 없고 화살조차 관통할 수 없는조화된 그 존재는 바로 우리의 내면에 있다." p250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 서있을 때나 앉고 걷고 자고 깨어날 때,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행위가 실제로 일어나고 잇는 바로 그 지점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p251

 

육체에게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든 '나'에게 일어난다는 생각은 단지 그대를 비참함과 고통 속에 머물게 할 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비참함의 원인은 단 한 가지, 바로 육체와의 동일시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행복의 원인도 단 한 가지, 즉 육체와의 동일시가 깨지고 자신이 육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비로소 행복해진다.

 

행복을 위해, 육체와의 동일시를 깨뜨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올바른 기억'이다.

육체의 행위에 대한 올바른 기억, 올바른 각성, 올바른 관찰이 필요하다. p252

 

육체와의 동일시를 깨뜨릴 수 있는 실험이 있다.

이 실험을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계속 해나간다면 육체와의 동일시를 깨든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밤 명상 때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방안을 어둡게 한 다음 긴장을 푼다.

그리고 각 차크라에게 긴장을 풀도록 제안하면서 몸을 이완시킨다.

그런 다음 명상 속으로 들어간다.

몸의 긴장이 풀렷을 때 - 호흡이 이완되면서 전 존재가 침묵하게 된다 - 자기 자신의 죽음을 느껴보도록 한다.

그런 다음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지켜본다. p253

 

그리고 마침내 화장터에 도달한다고 상상해본다.  사람들은 관을 화장터의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는다.

귿르이 그대의 죽은 육체를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는 모습을 본다.

불꽃이 타오르고 죽은 육체는 사라져버린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라. 물론 이 모든 것은 상상일 뿐이다.

그러나 상상 속에서 이 모든 것을 실험해 본다면, 실제로도 이 모든 과정을 아주 분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상력이 죽은 육체가 사라져버리는 지점, 연기가 하늘로 오르는 지점,

연기가 공기 중으로 사라져버리는 지점 그리고 오직 재만 남게 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즉각적으로 완전하게 각성된 의식으로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들여다 보라.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그대가 육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상태를 '육체가 사라진 상태'라고 부른다. p254

 

그대 자신이 육체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인지는 극히 드물게 일어난다. 굉장히 드물게 일어난다.

그리고 육체와의 비동일시보다 더 값진 것은 없다.

 

그들의 영향권 하에 잇는 것은 육체뿐이다.

 

이것은 영적 수련의 첫 단계이다.

우리들 모두는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별로 어렵지 않다.

노력하는 자는 반드시 경험할 수 있다. p255

 

 

영적 수련의 두 번째 요소는 사념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그저 앉아서 그대 곁을 흐르는 사념의 물줄기를 지켜보라.

아무 것도 하지 말라. 아무 것도 방해하지 말라. 어떤 식으로든 흐름을 막지 말라.

어떤 식으로든 억압하지 말라. 사념이 온다면 막으려 하지 말라.

사념이 오지 않는다면 굳이 오게 하려고 강요하지 말라. 그대는 단지 관찰자일 뿐이다.

 

그러한 단순한 관찰 속에서 그대는 사념과 자신이 분리되어 잇음을 보게 되고 경험하게 될 것이다.

즉 사념과 분리되어 있는 사념, 사념과 다른 사념을 보는 자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 깨닫게 되면 신비한 평화가 그대를 감싸게 된다. p256

 

우리들 내면에는 두 사람이 존재한다.

하나는 하는 자, 즉 행위자이고 다른 하나는 지켜보는 자, 즉 관조자이다.

 

인도에는 이러한 말이 있다.

'지켜보는 자는 그대이다. 그리고 하는 자는 그대가 아니다. '

 

사념을 지켜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색가가 되지 말라.

기억하라! 사색가가 아니라 사념을 지켜보는 자이다.

명상하는 자는 그 안에 두 개의 흐름이 있다.

즉 사념과 관조가 그것이다. p261

 

사념에서 관조로 옮겨가려면, 우리는 사념과 관조에 대해 동시에 명상해야만 한다.

나는 이것을 옳은 관찰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것을 옳은 기억이라고 부른다.

마하비라는 그것을 '깨어날 수 있는 지성'이라고 불렀다.

감정의 정화를 위해서 증오가 있던 자리를 사랑으로 채우고, 적대감이 있던 자리를 우정으로 채워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이 진리에 대해 깨어 있어야만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 사이에 놓인 차이란 단지 각성의 문제일 뿐이다.

사랑도, 증오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관조의 문제일 뿐이다.

때로 증오가 일어난다. 때로 사랑이 일어난다.

그럴 때 단지 관조하라. 단지 지켜 보라. p262

 

깨어있음은 사랑과 미움의 뒤에 있다.

깨어 있음은 육체, 사념과 감정, 그 모든 것 뒤에 있는 의식이다.

 

그 순수한 관조가 바로 지성이다.

우리는 그 순수한 관조를 지혜라고 불러왔다.

 

내면적이고 영적인 수련의 기본적인 질은 육체의 행위에 대한,

사념의 과정에 대한 감정의 내면적 흐름에 대한 옳은 관찰이다. p263

 

그대 의식의 보트는 어디에 묶여 있는가?

육체에, 사념에 그리고 감정에 묶여 있다. p264

 

라마크리쉬나가 이런 말을 했다.

'보트를 풀어라, 돛을 열어 신성의 바람이 그대를 데려가도록 하라. 노를 저을 필요조차 없다. '

 

명상이란 보트의 밧줄을 푸는 것을 의미한다. p265

 

옳은 관조란 무의식의 반대이다. 그대는 무의식 상태에 있다.

그대는 육체라는 보트에, 사념이라는 보트에 그리고 감정이라는 보트에 묶여 있다.

 

오직 내면의 영적 수련만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옳은 기억이다.

옳은 기억 또는 옳은 지성 혹은 옳은 의식, 이것을 기억하라.

옳은 기억을 지속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 가지 정화와 세 가지 텅 비어 있음이 가능하다면....세가지 순수화는 세 가지 텅 비어 있음을 그대에게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세 가지 텅 비어 있음을 경험할 수 잇다면 그것이 바로 사마디, 깨달음이다.

사마디란 진리에 이르는 문이고 자아에 이르는 문일 뿐 아니라 신성에 이르는 문이기도 하다. p266

 

그대는 알게 되리라. 창조자는 존재계 그 자체임을.

창조자란 없다. 존재계 그 자체가 창조자이다.

신성은 세상에 반대되는 경험이 아니다.

세상적인 태도가 사라질 때, 신성이 나타나게 된다.

 

사마디의 상태에서 우리는 진리를 알게 된다.

장막에 가려진 진리, 대개 진리란 가려져 있게 마련이다.

그러면 무엇에 의해 가려져 있는가? 우리의 무지에 의해 가려져 있다.

 

그리고 나는 눈앞에 있는 장막을 제거하는 방법을 이미 말해 주엇다.

즉, 세 가지 정화와 세 가지 텅 비어 잇음이 눈에서 장막을 걷어내도록 도울 것이다.

그리고 눈에서 장막이 벗겨져 나가고 없을 때,  바로 이때를 사마디라고 부른다.

어떤 장막도 없는 순수한 비저을 사마디라고 한다. p267

 

열망으로 가득한 자, 용기가 잇는 자는 자신의 삶에 변형이 일어났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는 앞서 나가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산을 기어오르는 것보다 더 위대한 도전이다. p268

 

마음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동시에 육체에 돨하게 된다.

약간의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육체로 하여금 무엇이든 하도록 명령할 수 잇다.

우리가 육체로 하여금 매일 무언가를 하도록 만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p269

 

기억하라! 인간의 전적인 개발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두뇌의 광대한 부분이 전혀 쓰이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p271

 

2009/04/08 10:30 2009/04/0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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